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국 요리/원인 분석 (문단 편집) === [[산업 혁명]] === [[영국]]은 세계 최초의 [[산업 혁명]]으로 인해서 많은 농민들이 농토를 상실하고 [[도시]]로 이주했다. 이로 인해 농촌 사회에서의 전통적인 식단은 자연스럽게 단절되었고 [[중세시대]]의 농노만도 못한 삶을 강요당했던 도시 [[노동자]]들의 생활환경은[* 농사는 노동 시간을 여섯시간에서 열두시간으로 늘린다고 생산이 두 배가 되는건 아니지만 공장 노동은 두 배에 가까운 유의미한 생산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 공장주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두 배로 굴리려고 애를 썼고, 식사 시간마저 박탈해 가면서, 아동 노동을 시키면서까지 생산 증가를 위해 온갖 수단을 썼다. 거기에 이윤을 위해 임금을 '안 주느니만 못한' 수준으로 주고, 반발하면 '너 말고도 일할 사람은 많아~'라며 해고 및 해고 협박으로 일관.] 맛있는 음식에 대해서 신경을 쓸 '''경제적, 시간적 여유를 아예 빼앗아가 버렸다.''' 살인적인 노동 끝에 요리할 시간도 여력도 없어 음식을 사서 먹어야 하는데, 하다못해 비스킷 살 돈이 없다보니 질량 대비 높은 칼로리를 보장하는 설탕을 퍼먹고[* 플랜테이션 등으로 인해 이전까지 매우 비쌌던 설탕은 산업 혁명 당시에는 하층민들도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가격이 상당히 내려간 상태였다.], 그 단맛을 좀 중화시키고자 차에 설탕을 타서 마시는 게 아니라 설탕에 차를 부어 먹고, 힘든 삶을 잊고자 싸구려 진을 들이키고... 실제로, 한국 역시 산업화로 접어들면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에서는 3첩 반상과 같은 기본 상차림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국밥처럼 아예 밥이 말아서 나오는 경우도 태반이었고, 간장 대신 소금, 이후에는 간을 할 필요조차 없는 고추장 양념 일색으로 바뀌었다는 점도 상기해보기 바란다. 오늘날에 들어서야 밑반찬의 가짓수가 너무 늘어나서 음식물 쓰레기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재밌는건 [[일본]] 또한 비슷한 시기가 있었고 결과적으로 [[규동]]과 '''[[초밥]]'''이 만들어졌다. 물론, 초밥은 에도 시대 이전부터 기원해왔지만 패스트푸드화한 것이 현재의 초밥이다. 또한, 국제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의 도시는 천연재료의 산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신선한 음식을 싼 가격에 대량으로 생산하여 운송을 하는 수단이나 오랜 기간 동안 식료품을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는 [[냉장고]]같은 물건이 존재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런던]]은 100만 이상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었지만, 여전히 [[운하]]를 통해서 [[마차]]가 끄는 운반선으로 실어온 [[음식]]을 먹어야만 했다. 따라서 런던의 도시 사람들은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식품에 주로 의존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절인 [[채소]]류와 [[고기]], 그리고 냉장할 필요가 없는 근채류가 그것이다. 이런 식재료만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식문화를 향상, 유지하는 것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신선한 식재료를 구하기 어려웠던 문제가 조리법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고기건 야채건 선도가 떨어지는 탓에 말라비틀어질 정도로 바싹 굽는 습관이 생겼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런던 사람들이 남 부럽지 않게 신선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냉동, 운송 기술이 나올 무렵에도, 그들은 이미 빅토리아 시대의 형편없는 식습관에 익숙해져 버린 상태였다. 그리고 식재료에 들어갈 돈으로 영국의 [[희석식 소주]]라고 부를 수 있는 싸구려 술인 [[진(술)|진]](Gin)을 사서 마셨다. 칵테일 중에 진을 베이스하는 종류가 많은 것은 맛없던 진을 맛있게 먹고자 했던 노력의 산물이라고. 맛없는 식사를 먹을 돈으로 기분 좋게 마실 술을 사 마시는 격으로 이 당시의 정신나간 사회상은 "진의 거리"[*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eer-street-and-Gin-lane.jpg|width=550]] ('맥주 거리 / 진 거리', 윌리엄 호가스, 1751. 2차출처 위키피디아)] 라는 삽화로 묘사되기도 했다. 한편 그 당시 영국 노동자의 [[평균 수명]]을 40세로 만든 원인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으나, 전근대 사회에서 평균 수명이 24~25세에 불과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오히려 증가한 수치다. 1820~1830년대 [[맨체스터]], [[리버풀]] 등 공업도시에 살았던 노동자의 평균수명은 겨우 '''15~19세'''였다고 한다. 다만, 이 때 평균수명이 매우 낮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엔 약간의 통계적 오류도 포함되어 있다. 당시 열악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처참한 위생 환경 및 식습관, 과도한 아동 노동[* 10세 전후의 어린이들이 하루 10시간도 넘게 일하는 경우가 흔해 빠졌다.]으로 인해 아동 사망률이 극도로 높았기 때문이다. 다만, 산업화 과정은 굳이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어지간한 나라들은 다 거친 것이다.[* 저장 기술이 발전하지 않은 19세기 한정.] 이 부분에 대해서도 국가 간의 비교가 요구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